건망증 3 어디서 까맣게 속 타는 소리 길 건너 방앗간 깨 볶는 냄새 창너머 논 보릿대 타는 냄새 화석처럼 하얗게 굳은 머릿속 냄비와 함께 새까맣게 탄다. 오늘도 세월에 덤터기를 씌운다. pink 시집 2010.04.14
이사 친정집이 팔렸다 광포리※ 975번지 빚으로 터를 고르고 집을 지었을 때 기쁨보다 살갗을 스치는 볕이 더 따가웠다 꽃그늘은 언제나 멀리 있었고 어머니는 늘 시간에 쫒기며 실핏줄이 터질 듯 고단한 몸을 부렸다. 떠날 줄 몰랐다 이리도 쉽게 곰삭은 세월만큼 뒤울안은 붉은 저녁놀로 물들고 생각이 비.. pink 시집 2010.04.14
雨中 산책 雨中 산책 - 정혜자 빗방울이 듣기 시작할 때 작은 아이와 집을 나선다. 텃밭 상추 잎에 떨어지는 경쾌한 빗소리 대추나무 물오른 연잎은 새초름히 돋아나고 물을 댄 논에 개구리 울음 정겹게 들린다. 축구장 잔디처럼 자란 어린 모 도란도란 키 재기 하고 물을 담은 논, 슬픈 하늘까지 끌어안는다. 간.. pink 시집 2006.12.20
자화상 자화상 - 정혜자 흐트러질 것 같지 않은 침묵은 오늘따라 나를 더 힘겹게 하고 어머니의 품안에 안기듯 성당으로 빨려든다. 머리가 하얀 할머니와 눈이 마주치자 조용히 옆자리로 건너와 앉으신다. 인사를 건네자 기다렸다는 듯이 살그머니 내미는 구멍 난 바지 혼자 먹는 밥 짓기 싫어 김밥을 사고 미.. pink 시집 2006.12.20
건망증 2 건망증 2 - 정혜자 마흔 살 생일 아침 게으른 된장찌개를 끓였다. 집안 가득 구수한 냄새와 보글거리는 소리 잊어야 할 것은 머릿속에서 거품처럼 떠다니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까마득한 산모퉁이를 돌아나간다. 미역국을 꼭 먹어야 인덕(人德)이 있다는 어머니 말씀 저녁에 늦은 미역국을 끓인다. pink 시집 2006.12.20
편지 편지 - 정혜자 비가 내리자 땅에서는 알싸한 흙냄새 일제히 공중으로 떠올라 건조해진 몸속으로 파고든다. 어둠이 내리고 봄이 촉촉해질 즈음 바람타고 날아든 한 통의 편지. 어젯밤 어두운 표정이 맘에 걸려 말이 없어도 알수 있는 마음 편지에 묻어나는 사랑 소리없이 울었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 pink 시집 2005.12.13
입관 입관 - 정혜자 관이 열리자 좁고 긴 어둠이 연기처럼 피어 오른다. 화방사 주지스님의 염불은 허공을 웃돌고 오직 너의 속으로 삼키는 눈물만이 나를 휘감아 나간다. 울지 말거라. 마지막 순간을 눈물로 채우지 마라. 누구나 한 번은 가야 할 길. 몸속의 마지막 한방울의 피가 말라가는 그 고통으로 나.. pink 시집 2005.12.13
새벽을 열며 새벽을 열며 - 정혜자 새벽이 다가올수록 내 의식은 더욱 불투명해지고 늦여름 찬바람에 발이 시리다. 들리지 않는 친구의 서러운 얘기. 눈물 속으로 삼키는 이야기를 나는 애써 피하지 않는다. 이제는 나를 사랑하리라. 오늘은 그 끝이 보이지 않아도 내가 너의 소박한 이야기를 듣는 날이 끝이 없듯.. pink 시집 2005.12.13
공감 공감 - 정혜자 비가 올것 같은 하늘을 보면서 따뜻한 차한잔 생각나듯 몇마디 말 하지 않아도 눈으로 맘을 읽어주고 우울한 밤 하늘을 올려다 보면 함께 별을 보고 있을것 같은 그런 사람이 있다면 참 행복하다. pink 시집 2005.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