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그림 첫 그림 - 정혜자 크레파스를 잡은 고사리 손 엄마가 만들어 준 커다란 달력 그림판에 며칠동안 색색깔 비만 내리더니 오늘은 둥근 해가 떴다. pink 시집 2005.12.13
바다가 보이는 강의실에서 바다가 보이는 강의실에서 - 정혜자 나른한 토요일 오후 바다가 보이는 강의실에서 들리지 않는 파도소리에 귀기울인다. 슥삭슥삭 시험지 위로 일사천리 채워져가는 답안 항상 모자란다고 느끼지만 그 때는 모른다. 그 필요성을 이렇게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되는데 돌아오는 마음은 배가 고파 더 허전.. pink 시집 2005.12.13
내 속에 불났다. 내 속에 불났다. - 정혜자 내 안의 작은 불씨가 나를 향해 달려드는 불이 되고 망각의 시간이 길어 그것은 또다시 기지개를 켠다. 휑한 바람에도 떨어지는 노란 은행잎에도 가슴 아파 눈물이 나고 마음만 적시는 눈물이 강이 되어 바다로 가는데 내 맘과 다르게 돌아가는 세상 차마 내 속에 담아두기엔 .. pink 시집 2005.12.13
내게 남은 하나 내게 남은 하나 - 정혜자 너무나 당연하고 사소한 일들이 때론 나에게 절실할 때도 있다. 눈이 부신 투명한 가을 하늘도 아침공기를 마시며 숨차게 오르는 산길도 재잘대는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거리도 겨자소스를 뿌린 해파리냉채의 톡 쏘는 맛도 신나는 랩송에 흥얼흥얼 콧노래도 모두가 축복인 .. pink 시집 2005.12.13
작은 아들 작은 아들 - 정혜자 “아빠, 다녀오겠습니다.” 끄덕! “할머니, 안녕하세요?” 끄덕! “밖에 자전거 타러 나갈까?” 끄덕! “배고프니? 우유 먹을까?” 끄덕! 말이 늦은 작은 아들 세상과 통하는 언어입니다. 살면서 고개 끄덕이는 일만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pink 시집 2005.12.13
할아버지 할아버지 - 정혜자 팔순을 훌쩍 넘겨 예고 없이 찾아든 치매 여든 여덟 해를 살아오며 남에게 싫은 소리 듣지 않고 참말로 선하게 사셨던 할아버지 밥 안주는 며느리를 고발하러 경찰서에 가셨다가 쫓겨오고, 칠십 년 살았던 고향을 못 잊어 매일 꿈속을 걸으시던 할아버지 시아버지의 마지막을 느낀 .. pink 시집 2005.12.13
건망증 건망증 - 정혜자 머리 빗을 찾다가 두 살배기 아들에게 눈 흘기고 휴대폰을 찾다가 또 한번 눈 흘기고 아이구, 미안해라 늦은 밤 화장대 서랍 안에 빗이 가로누워 있고 장식장에 휴대폰이 귀를 막고 잔다. 주부건망증은 길 건너 남의 얘긴 줄 알았는데. 거울을 보다 가끔 발견되는 흰머리 지나다 들린 .. pink 시집 2005.12.13
손톱 깎기 손톱 깍기 - 정혜자 늦은 밤 쉿! 엄마는 정밀한 작업중이다. 잠귀가 밝은 작은아들의 손톱을 아무도 모르게 깎아야 한다. 어쩜 이리도 작고 예쁠까. 보드라운 손끝을 타고 밤은 아들을 꿈나라로 데려가고 함께 가지 못한 손톱은 그만 엄마에게 들킨다. 팅! 퉁겨져 나간 손톱은 호기심 많은 눈으로 까만 .. pink 시집 2005.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