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합실에서 니 올해 팔십서이가? 아직 젊다 아이가? 아따 장골이다 까마득한 대화 듬성듬성한 치아 틈 돌아 나온다 아재 표 끊었는교? 하모 내가 끊어 올낀데 이거 하나 잡수소 빨대 꽂힌 요구르트 구석자리 아낙 손에 오지게 잡혔다 읍내 영섭이는 어지간히 젊더라 만섭이 오춘이다 야물게 생깄.. pink 시집 2012.12.30
아버지 갑자기 추원진다는 일기예보에 부리나케 배추를 뽑아다 쌓아 놓고 대문간에 눈으로 발자국 그리며 오전 내내 딸내미 기다리신다 '자네가 따라가게' 가서 김장을 거들고 며칠 있다 오라며 기어이 어머니 등을 떠미신다 칠순의 아버지 마흔다섯 딸은 여전히 일곱살 재롱 많던 고명딸 우리 .. pink 시집 2012.12.30
친정 엄마 여자가 살림을 하다보면 간이 작아져서 비싼 보약을 못 해 먹는데 다리에 바람드는 병은 약을 꼭 먹어 야 낫는데 효험을 보려면 50 전에 먹어야 하는데 인공관절 수술 받은 우리 엄마 사위가 듣건 말건 종일 넋두리를 그치지 않으신다. pink 시집 2012.12.30
오션플라워 호에서 배를 탔다 선박의 엔진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난다 부러진 날개 바람을 일으키며 요란한 소리로 바다에 내리 꽂힌다 여행에 들뜬 사람들 한꺼번에 쏟아내는 목소리 멀미가 난다 pink 시집 2012.12.30
건망증 5 감기몸살 앓던 날 병원 진료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는 머릿속이 아득히 백짓장 되다. 오뉴월 찬바람 뼛속을 파고들어 조심스레 운전했던 일을 잊었다. 되돌아온 길 다시 걸어 병원 주차장에 도착하니 덩그러니 그 자리에 차가 서 있다. 내 머릿속 기억을 도둑맞았다. pink 시집 2010.04.14
건망증 4 저녁 준비를 하다가 무심코 열어 본 전자레인지 아침에 들어간 조기 두 마리 나를 노려본다. 제 육신 타들어가는 줄 모르고 다른데 정신 팔고 산다며 나를 나무란다. pink 시집 2010.04.14
가을 속으로 노란 은행잎이 바람에 날리면 하늘은 금방이라도 시리게 푸른 눈물을 떨어뜨리고 시집詩集 속에서 떨어진 은행잎 한 장 지난 가을이 고스란히 눌러 담겨 짙은 향기에 하늘마저 취한다 애잔한 빛으로 물든 잎은 가을비에 촉촉하게 젖어 가는데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내리면 그리운 사람을 만나 따뜻한.. pink 시집 2010.04.14
앞집 이모 401호 혁이는 앞집 이모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 이모를 만날때는 웃으며 인사하고 얌전하게 대답 잘하는 착한 아이 집에서는 엄마 아빠도 못 이기는 떼쟁이 오늘은 감기몸살로 열이 펄펄 병원에서 링거 맞고 약도 가져왔는데 먹지 않으려고 떼쓰는 바람에 엄마 아빠 마음은 안절부절 앞집 이모가 떠 .. pink 시집 2010.04.14
버릇 꽃을 산다. 봄이면 겨우내 찬바람 일렁이던 가슴 한 구석에 꽃을 사다 심는다. 봄바람 살랑살랑 머물다간 하늘 목련 가득히 뿌려지면 늘 그렇게 꽃가게를 서성인다. 겨우내 사랑을 잃은 빈 화분을 골라내 잘 고른 흙을 채우고 사랑을 눌러 담지만 언제나 모자라는 그리움 또 새로운 꽃을 산다 고급스런.. pink 시집 2010.04.14
마음가는대로 산모롱이 돌아 산딸기 빨갛게 익고 언덕배기 들국화 하얀 웃음 뿌리는 길 걸음을 재촉하는 어머니 같은 두 분 슬금슬금 눈길이 차를 앞서 달리고 따가운 여름 볕이 쏟아지는데 세울까? 그냥 지나갈까? 괜한 노인네 태웠다가 낭패 보았다는 말도 들었는데 마음속에 파문(波紋)이 인다. 매상(買上)하고 .. pink 시집 2010.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