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nk 시집

자화상

bike 2006. 12. 20. 23:50

자화상 - 정혜자

흐트러질 것 같지 않은  침묵은

오늘따라 나를 더 힘겹게 하고

어머니의 품안에 안기듯 성당으로 빨려든다.


머리가 하얀 할머니와

눈이 마주치자

조용히 옆자리로 건너와 앉으신다.

인사를 건네자 기다렸다는 듯이

살그머니 내미는 구멍 난 바지

혼자 먹는 밥 짓기 싫어 김밥을 사고

미사시간 늦을까봐 급하게 길을 건너다

오지게도 넘어지셨다.

무릎이 깨지고 멍이 들어도

시리고 아픈 무릎보다

사서 몇 번 입지 않은 바지가 더 아깝다고

오랜 침묵을 일시에 쏟아낸다.

 

외로움이 손끝을 타고 내게 건너온다.

깨어졌던 침묵이 다시 자리를 잡을 때

잠시 무거워진 마음을 곁에 내려놓는다.

우리는

정말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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