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 정혜자
흐트러질 것 같지 않은 침묵은
오늘따라 나를 더 힘겹게 하고
어머니의 품안에 안기듯 성당으로 빨려든다.
머리가 하얀 할머니와
눈이 마주치자
조용히 옆자리로 건너와 앉으신다.
인사를 건네자 기다렸다는 듯이
살그머니 내미는 구멍 난 바지
혼자 먹는 밥 짓기 싫어 김밥을 사고
미사시간 늦을까봐 급하게 길을 건너다
오지게도 넘어지셨다.
무릎이 깨지고 멍이 들어도
시리고 아픈 무릎보다
사서 몇 번 입지 않은 바지가 더 아깝다고
오랜 침묵을 일시에 쏟아낸다.
외로움이 손끝을 타고 내게 건너온다.
깨어졌던 침묵이 다시 자리를 잡을 때
잠시 무거워진 마음을 곁에 내려놓는다.
우리는
정말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