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이야기

그것은 분명 여행이다.

bike 2004. 10. 13. 01:08

1.
여행이란?
인생이란 하나의 긴 여행이라 말한다.
여행이야말로 삶의 가장 직접적인 체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생활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어떤 새로운 국면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2.
나는 여행을 많이 한다.
나는 전국에 있는 구석구석을 다닌다.
10년 이상을 그렇게 한다.
자가용이 아닌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지금도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좋은 여행이며 좋은 경험이다.
정해진 시간 동안은 나의 몸은 자유이며 세상살이를 여유 있게 보고 생각한다.
바쁘고 힘든 출장이다.
이제는 그것이 출장이 아닌 좋은 여행임을 깨닫는다.

 

유명한 관광지도 빠짐없이 다닌다.
유명한 관광 명소는 가지 않는다.
갈 수 있는 시간 여유가 없다.
가족을 남겨두고 나 혼자 간다는 것이 또한 미안하기 때문에 가지 않는다.

 

우리 나라 지명 알아 맞추기 대회가 있다면 나는 1등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대회가 없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다.
타향살이하는 사람에게 그 사람의 고향을 간 적이 있다는 사실에 반겨줄 뿐이다.


3.
2001년 11월 9일
또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다.

 

- 마산행 첫 버스
  새벽에 일어난다. 아내가 터미널까지 차를 태워준다. 아내는 아무리 일찍 출발해도 아침상을 준비해 준다. 10년 동안을 그렇게 한다. 요즈음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아침밥을 먹지 않고 출발한다. 마산행 첫 버스는 열심히 부지런히 사는 사람들도 가득 채워진다.

 

- 천안행 새마을호 기차
  기차 좌석에 앉아 바로 잠을 청한다. 어제 밤 아니 새벽까지 컴퓨터와 힘 겨루기를 한 탓이다. 일반석은 없어 특실을 이용한다. 새마을호 특실은 비행기 손님과 같은 서비스를 받는다. 일간지와 음료가 무료로 제공된다. 이어폰으로 음악 감상과 TV 시청도 가능하다. 안내원은 밝고 무언가를 서비스하기 위해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한다. 생동감이 넘친다.

 

- 천안역
  장항선 열차시간까지 1시간이 남는다. 점심을 먹는다. 천안 역에서 나오면 왼쪽으로 식당이 있다. 출입구부터 조금 낡아 보인다. 식당 창문에는 분식 한식 중화요리의 메뉴가 다 붙어있다. 그곳에 가기 싫어 지하상가에 있는 분식점 코너에서 항상 먹거리를 먹는다. 오늘은 그냥 가기 싫은 그 식당에 간다. 약간 망설이다가 들어간다. 들어가니 인정 있는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임을 느낀다. 주인도 할머니 주방에도 할머니 음식 나르는 분도 할머니이다. 손으로 만들어진 손맛이 있는 식당이다. 잔치국수를 먹는다.

 

- 삽교행 무궁화호 기차
  삽교는 삽다리가 있는 곳이다. 조영남씨의 노래에 나오는 내 고향 충청도 삽다리이다. 옆에 이제 6개월된 아기를 안고 있는 부부가 앉아 있다. 아기가 우유를 먹다가 모두 토한다. 아기 엄마는 아기를 안고 뒤처리하는 것을 보니 어설픈 엄마로 보인다. 아빠는 아주 바쁘게 책을 보고 노트 정리를 하고 있다. 원고를 쓰는 것 같기도 하다. 옛날 나의 생활처럼 보인다.

 

- 삽교역 앞 버스 정류소
  삽교 버스 정류소에서 고덕행 완행버스를 기다린다. 언제 올지도 모르고 어디에서 내려야 할지를 모르지만 완행버스를 기다린다. 친절한 매표소 아저씨가 고덕행 버스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을 해 준다. 30분을 기다린다. 나는 기다림을 좋아한다. 늦가을에 시골의 한적한 버스 정류소의 때묻은 낡은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린다.

 

- 고덕행 버스
  시골 완행버스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뿐이다. 대부분 허리는 굽어있다. 삶에 지치고 농사에 지친 모습이지만 마음은 평온해 보인다. 나이 많은 분들이 모두 무거운 보따리를 하나씩 들고 있다. 엄청 나이 많은 할머니가 엉뚱한 노선 버스를 타고 기사에게 가자고 우긴다. 기사는 버럭 버럭 화를 낸다. 버스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노인네가 집에 있지 왜 나와서 남에게 피해를 준다고 웅성거린다.

 

- 수원으로
  고덕에서 일을 한다. 일을 마치고 삽교를 지나 예산으로 간다. 예산에서 천안으로 간다. 천안에서 수원으로 간다. 버스 안에서 계속 잠을 잔다.

 

- 수원 터미널
  수원 터미널은 수원 역 앞에서 이전한 곳이다. 터미널과 역이 함께 있으면 다니기가 편한데 조금 불편할 것 같다. 저녁을 먹는다. 뼈 해장국이다. 너무 뜨겁다. 입천장이 엉망으로 된다. 저녁을 먹은 후 발안으로 출발한다. 이미 하루는 저문다. 어두운 초저녁이다.

 

- 발안
  발안에 도착한다. 깨끗한 여관에서 잠을 청한다. 아침에 일어나 출장지에 가서 일을 한다.

 

- 수원역
  일을 마치고 수원역을 향한다. 나는 그냥 서민임에 분명하다. 이제는 시내버스를 탄다. 낯선 곳에서의 시내버스는 가끔 당황하게 만든다. 도착지를 지나가든지 아니면 버스를 잘못 타서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점이 수원역이라 안심하고 시내버스를 탄다. 할아버지가 하차벨을 누르고 기다리고 있는데 운전기사가 그냥 정류소를 지나가 버린다. 할아버지가 고함을 친다. '운정기사가 정신을 어디다 빼 먹었느냐!' 마음씨 좋아보이는 운전기사는 미안한 웃음을 지으면서 버스를 정차시킨다. 할아버지도 살짝 웃으면서 버스를 내린다. 수원역에서 점심을 먹는다.

 

- 집으로
  마산행 무궁화호 기차를 탄다. 미리 준비한 책 한 권을 읽고 마무리한다. 마산 역에서 20분 정도 기다린 후 함안행 통일호 기차를 타고 함안에 도착한다. 아내가 역 앞에서 아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다. 무사히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온다. 좋은 여행을 마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다.


2001.12.07 

 

pink -  고생이 많군요. 화이팅!!!!

'자전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만이 즐기는 여행  (0) 2004.10.13
마음을 가라앉게 한다.  (0) 2004.10.13
연천역 대합실에서  (0) 2004.10.13
1994년 나와 아내의 모습  (0) 2004.10.13
자연은 나를 충고한다.  (0) 2004.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