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이야기

아버지

bike 2004. 10. 12. 14:05

나는 아버지를 좋아한다.
아버지도 나를 좋아한다.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신다.
옛날에는 술고래라는 말을 달고 다녔다.
누나 시집가던 날
소주를 큰 대접에 마시는 모습에 많은 분들이 감탄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기분 좋은 일이 있으면 꼭 술을 드신다.

 

요즈음은 걱정이다.
연세도 많으시고 건강에도 항상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술을 드시면 몸이 예전처럼 같아 보이지 않는다.
술을 많이 드시면 나를 찾는다.
세상은 너무 험하다.
술 드시고 정신없이 계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추석 뒷날
처가집에 갔다와서 잠시 쉰다.
전화벨이 울린다.
'아버지다. 공설운동장에 있다. 아버지 빨리 와서 찾아보아라'
아버지다.
동별 체육대회가 있는 운동장에서 술을 드신 것이다.

 

넓은 운동장에서 아버지를 찾는다.
휴대폰으로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어디에 계시는가?
어떻게 한다고 술을 그렇게 드셨을까?
운동장을 한바퀴 돌아도 찾을 수가 없다.
왜 그렇게 술을 드셨는지 원망한다.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아버지를 본다.
천만 다행이다.
아버지는 무척 좋아하신다.

 

체육대회 행사에 나오니 아는 사람이 너무 많다.
여기 저기서 아버지를 부른다.
몸을 생각해서 거절해야 하는데, 권하는 술을 모두 마신다.
아버지는 아는 분이 많다.
아버지를 좋아하는 분도 많다.

 

이제 아버지 마음이 이해된다.
아버지는 아버지다.
나는 아버지를 좋아한다.

 

2001.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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