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래아의 꽃 (나자렛의 마리아)'을 읽고
- 글쓴이: 코즈모 프란체스코 루피 | 옮긴이: 김성길 | 출판사: 가톨릭출판사 | 2003년 5월 6일
성모님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 읽어본다.
성경에서는 간단하게 나온다.
간단하게 나온 이유는 성모님보다 예수님의 구원사업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자 요한이 성금요일 오후부터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시고 보살펴드리고 함께 한다.
성경의 예수님 유년 시절은 마리아로부터 들은 요한의 이야기이다.
요아킴과 안나
마리아의 아버지와 어머니다.
요아킴과 안나 부부는 복된 부부, 정결한 부부, 참으로 흠이 없는 부부로 불린다.
마리아가 갈릴래아 지방의 어떤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다.
그 곳이 바로 나자렛이다.
즈가리아는 정말 착한 사제였지만 믿음이 약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식을 원하고 갈망했지만
그의 인간적인 생각이 주님의 말씀을 믿음 안에서 받아들이지 못하게 했다.
믿지 않는 사람은 벙어리가 된다.
믿는 사람은 후손을 낳고 모든 것을 지니게 된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실 것이다."
아,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이어라!
바로 이 말만이 마리아의 모든 의문들과 2천 년 동안
우리가 던지고 있는 같은 의문들에 대한 정확하고 유일한 대답이다.
마리아는 성령에 의해 예수님을 잉태한 후에 엘리사벳을 방문한다.
나자렛에서 엘리사벳이 사는 아인 카렘까지는 약120~130Km나 된다.
1주일 이상 힘든 여행을 하여 엘리사벳의 출산을 도와준다.
아인 카렘에서 마리아는 유명한 마니피캇을 노래한다.
마리아의 노래 '마니피캇' (루가복음 1장 46-55)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며,
나를 구하신 하느님께 내 마음 기뻐 뛰노나니,
당신 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로다.
이제로부터 과연 만세가 나를 복되다 일컬으리니,
능하신 분이 큰일을 내게 하셨음이요
그 이름은 거룩하신 분이시로다.
그 인자하심은 세세대대로
당신을 두리는 이들에게 미치시리라.
당신 팔의 큰 힘을 떨쳐 보이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도다.
권세 있는 자를 자리에서 내치시고
미천한 이를 끌어 올리셨도다.
주리는 이를 은혜로 채워주시고,
부요한 자를 빈손으로 보내셨도다.
자비하심을 아니 잊으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으니
이미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위하여
영원히 우리 조상들에게 언약하신 바로다.
모든 찬미가들과 시편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노래이다.
그것은 단순히 '성모 찬송'이 주님의 어머니께서 노래하셨기 때문만이 아니라
교회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감사와 찬미의 감정을 요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할 때,
요셉은 의심과 두려움을 가졌으나, 꿈에 나타난 천사에 의해 마리아와 결혼한다.
로마제국의 황제 아우구스ㅅ토에 의해 선포된 호구조사령으로
남편의 본적지에서 신고를 하기 위해 나자렛에서 베들레헴으로 이동을 한다.
그녀를 평온하게 하고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준 단 한 가지는
바로 자신은 단지 여종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되뇌는 것이었다.
여종으로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순명하는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분명히 힘든 여행이었을 것이다.
단지 긴 거리 때문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이제 거의 출산을 앞두고 있는
마리아의 상태로 볼 때 참으로 힘든 여행이었을 것이다.
작은 하얀 집들이 있는 베들레헴은 해발 770m에 위치해 있고
유다 지방의 두 봉우리 위에 자리 잡고 있다.
베들레헴 지역에 형성된 수많은 동굴들 가운데 하나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예수의 탄생은 극도의 가난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 누구도 이와 같이 태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히 마리아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처럼 산고를 겪었다.
비록 아들 탄생의 기쁨이 그녀를 위로했지만 산고와 비참함과 가난함 속에서
아이를 낳아야만 했던 아픈 마음은 너무도 큰 것이었다.
주님의 탄생을 알아본 첫 사람들은 베들레헴의 가난한 목자들이다.
지금까지는 목자를 마음 좋고 착한 여유 있는 양치기로 생각했는데...
그 당시의 목자는 비참하며 멸시받는 족속으로 불한당과 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이 착한 목자로 불리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셨고
여러 번 양들과 목자의 비유 말씀을 통해 당신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설명하셨으며,
교회는 좋은 양들과 나쁜 양들이 섞여 있는 무리라는 사실을 모든 이에게 알리려 하셨다.
예수님은 베들레험의 동굴에서 태어나, 베들레험 마을의 마구간으로 이동한다.
태어난 뒤 몇 개월 후에, 베들레험의 임시 거처에 메시아를 경배하기 위해서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방문한다.
성전에 봉헌할 때, 시므온과 안나의 예언을 듣는다.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베들레헴에서 이집트로 1~2년 동안 이동한다.
예수 생애의 이 기간 동안 요셉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결정하고 가정을 이끌고 위험으로부터 가정을 보호하고 지키는 사람은 요셉이었다.
그러나 요셉은 자기 생각대로 하지 않았고
늘 천사가 일러준 하느님의 뜻에 따라 행동했다.
진정 요셉은 정직한 사람이었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다.
마리아와 요셉은 자주 그들이 받은 계시들에 대해 서로 얘기를 나누었고,
꿈속의 천사 발현과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곤 하였다.
마리아는 전통 풍습에 따라 몇 년에 한번씩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 순례를 간다.
순례를 마치고 나자렛으로 가는 도중에, 잃은 지 하루가 지난 뒤에 예수가 없는 것을 알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성전에서 되찾는다.
어머니 마리아의 삶 안에서도 이 순례 여행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어머니 마리아는 이 여행 이후 더더욱 드러나지 않는 삶, 즉 침묵과 기도의 삶을 사셨다.
예수의 대답에 대해 마리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마리아는 신앙의 순명과 위대한 겸손함으로 예수의 대답을 침묵 가운데 받아들이셨다.
마리아는 주님의 여종이었기에,
당신께 주어진 말씀들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모든 것을 받아들이셨고 늘 순명하셨다.
예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셨을 때, 요셉은 죽는다.
하느님의 아들과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지켜보시는 가운데
죽어가는 기회가 모든 이에게 일어나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요셉은 교회의 보호자, 평온한 죽음의 보호자로 칭송된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생각한다.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살아계시지만 따뜻함을 잃은 지 오래된다.
어머니와 다시 깊은 관계를 되찾고 싶다.
아들이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났다고 여기는 그곳에도
어머니는 조언하고 식별하기 위해,
그리고 도와주고 고쳐주기 위해 언제나 아들 곁에 머문다.
모든 것이 평범할 뿐이었다.
마리아는 과부가 되었고, 아들과 함께 생활했다.
예수께서는 요셉의 일을 이어받아 목공소를 운영하며 당시의 모든 남자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갔다.
마리아는 형언할 수 없는 신비스런 침묵 가운데 자신 안에 모든 것을 담으신다.
이 침묵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는 역동적인 침묵이다.
우리를 하느님의 말씀으로 인도하고,
당신의 아들을 철저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끄는 침묵이다.
가파르나움
매우 중요한 도시 가운데 하나이자 갈릴래아 지방의 중심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이 거쳐 가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당신의 첫제자 부름, 산상수훈, 거룩한 변모사건, 호숫가에서 성체성사 말씀
타브가에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복음서들이 전하고 있는 수많은 경이로운 기적들을 가파르나움에서 행하셨다.
나자렛에 홀로 남아 사람들이 전해주는 예수의 말씀과 행적을 멀리서 외롭게 들어야 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항상 아들 곁에 함께하였다.
"너희들은 예수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는 대로 하여라"
이것이 어머니의 역할이다.
즉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그분을 향하도록 우리를 이끄시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어 마침내 우리가 항상 예수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이 어머니의 역할이다.
제자들이나 손님들이 즐겁게 먹고 마시는 동안에도
마리아께서는 모든 것을 지켜보시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신다.
그리고 알맞은 때에 부드럽고 섬세한 목소리로
우리가 감히 청하거나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예수께 청하심으로
우리가 그것을 얻을 수 있게 해주신다.
예수께서 인용하신 비유들은 분명 당신 자신의 나자렛 삶으로부터 온 것이고,
어떤 비유들은 확실히 어머니 마리아의 삶에서 온 것이다.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가리아가 믿지 않아서 벙어리가 된 반면에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으셨기에 어머니가 되셨다.
신앙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말을 할 권리를 지니는 사람은 오직 믿음이 있고,
믿음 안에서 성장하고자 노력하며,
매일 자신의 신앙에 관한 증언을 행하는 사람이다.
신앙이 없는 사람이 해야 할 단 하나의 것은 입을 다물고 겸손하게 신앙의 선물을 청하면서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를 반복하는 일 뿐이다.
"주님, 제가 볼 수 있고 믿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주님, 저의 신앙이 자라게 해주소서!"
구원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공생활의 마지막 중요한 순간에는
참으로 힘겹게 맞이하고 있는 아들 예수 곁에 있기 위해
마리아는 나자렛의 평화로운 삶을 버리셨고, 만사를 제쳐두고 먼 길을 떠나오셨고,
예수님 주위에 머물러 계셨다.
성금요일 오후부터 마리아는 요한에게 맡겨졌다.
마리아는 요한의 보호와 보살핌, 돌봄을 받으시며 사셨다.
마리아와 요한은 이제 떨어질 수 없는 동반자가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요한의 자리에 바로 교회가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순간부터 마리아와 교회는 나뉠 수 없고,
어떤 의미에서 둘의 관계는 영원하다.
마리아가 계신 곳에는 교회가 있고,
교회가 있는 곳에는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가 항상 계신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에는
제자들에게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마리아였다.
제자들은 마리아를 중심으로 기도하고,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시고 함께 한다.
당신 아드님의 승천 후, 마리아께서는 기도로써 초대교회를 도와주셨고,
사도들의 초기 사도직 수행을 동행하시며,
사도들과 함께 성령을 넘치도록 받으셨다.
그러고 나서 요한과 함께 예루살렘을 떠나 에페소와 다른 여러 곳을 다니셨다.
승천 장소에 관해서는, 여러 정황을 고려해 볼 때 의심 없이 에페소였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나자렛의 동정녀 말고,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은총이 가득하신'분이라고 표현될 수 없다.
그분만이 자신 안에 은총의 충만함, 즉 하느님의 충만함을 지니신 분이다.
그분께서는 성령을 충만히 입으셨고, 성령께로부터 신적 모성의 은사와 은총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삶의 가장 큰 선물은 우리 가슴과 우리 삶 안에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간직하는 것이다.
성 알폰소 마리아의 고백
성모님께 기도하는 사람은 구원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모님께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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