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다. 함안에서 조치원, 옥산, 청주, 이천, 여주, 양평, 이천, 대전, 함안으로 돌아온다. 어디를 가든 고향이다. 예전에도 가본 적이 있고, 도로 양 옆으로 낮게 누운 산, 짙은 녹색으로 물들은 나무, 그 사이로 보이는 작은 마을, 논과 밭, 일하고 있는 아저씨 아줌마, 모두 고향 느낌이다.
1. 원수같은 아들과 원수같은 손자
함안에서 조치원가는 기차를 탄다. 함안역에서 아는 아주머니를 만난다. 말은 하지만 듣지를 못하는 분이다. 같은 기차로 아들집에 가는 줄 알았는데 마산 간다고 한다. 기차를 타자 바로 잠에 든다. 어제 밤에 늦게까지 일하고 새벽4시에 잠자리에 들었기에 쉽게 깊은 잠에 빠진다. 눈을 뜨니 옆자리에는 할머니와 손녀가 앉아 있다. 손녀가 할머니를 괴롭힌다. 때로는 울고, 때로는 여기저기 뛰어다닌다. 과자를 주면 먹다가 그냥 뱉어버린다. 옆에서 보니 정말 할머니가 걱정된다. 주위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눈치로 할머니는 고개를 들지 못한다. 우유를 젖병이 넣어 주니, 우유를 먹다가 꼭지를 입으로 뜯어 버린다. 꼭지에 큰 구멍이 생긴다. 할머니가 야무지게 손녀 이마를 딱!...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며, 그 어머니의 그 딸이다. 아들도 어머니를 힘들게 한 것 같은데, 손녀 마저 이렇게 힘들게 한다. 원수같은 아들에 원수같은 손녀이다. 그래도 끝까지 가슴에 안고 참고 참는다.
2. 집으로 가는 사람들
조치원에서 기차를 내린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옥산으로 간다. 옥산으로 가는 길목에 충남과 충북의 경계선이 나온다. 충북을 알리는 이정표를 보면서 옥산으로 향한다. 옥산은 작은 면이다. 옥산에서 작업을 마치고, 청주로 간다.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청주의 공단입구는 육거리이다. 모든 시내버스 노선은 다 지나가는 것 같다. 공단입구에서 청주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갈아탄다. 청주에서 이천으로, 이천에서 여주로, 여주에서 양평으로 간다. 서서히 하루 일과가 마무리되는 시간이다. 모든 이가 집으로 향하고 있다. 젊은 이들은 누구를 만나려고 하는지 단정한 옷차림으로 이쁘게 꾸미고 휴대폰을 귀에 심고 밝은 웃음으로 마냥 즐거워 한다.
3. 새로 지은 대전역 청사
다음 날, 양평에서 일을 마치고, 이천을 지나, 대전으로 간다. 기차 타는 것을 좋아하기에, 대전역으로 간다. 대전역이 확 바뀐다. 2003년 12월 완공이나, 일부를 공개한 상태이다. 넓은 공간이다. 밝은 색상으로 앞뒤좌우 모두가 환하다. 조금 더운 날씨인데, 역 안에는 시원하다. 좋은 세상이라는 표현이 절로 나온다.
4. 이버지의 향기
대전에서 기차를 탄다. 옆자리는 아무도 앉지 않는다. 옥천에서 한 분이 옆 자리에 앉는다. 아주 익숙한 향기가 난다. 아버지의 향기이다. 작년에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 바로 향기이다.
작은 봉지 2개를 들고와서 앞에 놓고 좌우 창문으로 바깥 세상을 즐긴다. 쏘세지를 하나 산다. 봉지에서 소주 한병을 꺼낸다. 쏘세지 봉지가 잘 뜯어지지 않는다. 직접 뜯어서 1개를 잘 드시도록 도와드린다. 그리고, 소주도 한 잔 직접 드린다. 나에게도 소주 한 잔을 권한다. 감사하다는 표현만 한다. 낮에는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버지와 똑같은 옷차림이며, 움직이는 모습이 바로 아버지이다. 연세도 아버지와 똑같다.
'큰 아들이 창원에 살아'
'마누라는 작년에 죽었어'
'큰 며느리가 자꾸 같이 살자고 하는데, 혼자 옥천에서 살아'
'마을 노인 회장이야'
'마누라는 행복한 사람이야, 나 보다 먼저 죽었으니'
'며느리 집에 가면, 낮에 할 일이 없어'
'마누라가 있으면 집안 청소라고 도와주는데, 나는 도와 줄께 없어'
'옥천에 내 자리를 만들어 놓았어. 죽으면 끌고가서 그냥 묻어면 되지'
'손자들이 좋아, 손자들이 좋다고 안고 어깨에 타기도 해'
'아들이 둘이고, 딸이 둘이야'
'모레가 내 생일이야, 생일이라고 오라고 해서 가는 거야'
'그냥 옥천에서 냉면 한 그릇 먹으면 되는데'
소주를 한잔 한잔 드신다. 창원에 도착하기 전에 소주 1병을 모두 드신다. 아버지도 술을 좋아하셨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 순간, 아버지 모습이 계속 떠오른다. 마음씨도 비슷함을 느낀다. 창원에서 그 분이 내린다. 나의 손을 잡고서 편안한 마음으로 참 잘 왔다고 말하면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나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셨다. 나는 항상 일 때문에 아버지와 함께 하지 못했다. 지금처럼 기차타고 여행을 했으면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했다. 조금씩 잊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또 선명하게 그려본다. 마산을 지나 함안에 도착한다. 나의 고향, 나의 집으로 돌아온다.
2003.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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