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이야기

마음의 갈망들

bike 2006. 9. 15. 12:25

성숙한 나를 위한 영성과 심리의 조화 '마음의 갈망들'을 읽고
- 글쓴이: 윌키 오 S.J., 노린 캐논 | 옮긴이: 우경민 | 출판사: 생활성서 | 2006년 5월 15일 
 

  마음의 갈망, 영성! 우리가 향하여 가는 마음이다. 이러한 마음을 설명하는 책이다. 논문과 같은 학술적이고, 조금은 전문적인 글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갈망들을 치료하기 위한 방법도 포함되어 있고, 각장의 마지막 부분에는 숙고할 질문들이 나온다. 영성에 대한 글에는 융의 심리분석학이 자주 나온다. 심리분석학에 대해 궁금해진다.


  시기! 가장 멀리해야 할 것이다. 시기는 상대방에게 피해를 준다. 작은 도움이라도 주지도 못하는데,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남에게 계속 베풀어야 하고, 착하게 보이도록 노력하는 의존성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본다. 종교적인 실천과 업적을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으로 혼동하는지 생각해 본다. 완벽을 항상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완벽할 수 없으며 약함을 그대로 보여줄 때, 그 약함으로 연민을 받을 수 있다. 연민은 예수님 사랑의 시작이다.


   복잡한 설명의 끝은 너무 간단하다. 바로 예수님의 이 말씀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15,9.12)

 


  온전함은 우리의 생각이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생각이다.

  우리를 성장하도록 자극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찾게 하는 마음의 갈망들은

  우리 각자 안에 유일하게 육화하시려는 하느님의 갈망을 반영한다.

 

  영육적 영성...온전함을 향한 우리의 갈망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예수님의 파스카 희생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죽음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받아들이고,

  자기초월로부터 오는 인격적 온전함을 받아들여야 한다.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과정에서, 하느님은 우리를 온전한 인간이 되게 하실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온전함은 그 자체 안에서 추구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한 정직한 투쟁들의 부산물로 나오는 것이다.


  20세까지 나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20세 후에 나는 이웃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끊임없이 걱정했다.
  그리고 50세가 지난 어느 날, 나는 그들이 전혀 나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라고 하신 예수님의 초대는
  우리에게 더 깊이 있게 살고, 의식적으로 의미를 추구하며 살라는 초대이다.


  버려진 자아...그림자와 온전함
  성욕, 분노, 야망, 창조성과 같은 모습들이 자신이 바라는 자아상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림자로 감춰진다.
  그 그림자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취하고 있는 것과 반대되는 목표나 가치를 지니며,
  그 자체의 삶을 가지고 있는 열등하고 종속적인 인격이다.

 

  종교인들은 특별히 그림자 문제에 약하다.
  왜냐하면 시야를 아주 높이 두고, 의식적으로 착하고 덕스럽게 살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심리적인 법칙이 있는데, 의식적으로 선을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그것의 어두운 반대 측면이 더욱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것이다.


  의존성... 온전함에 대한 배반
  영성이 자신을 소홀히 하면서까지 다른 사람을 사랑하도록 이끈다면

  우리는 이 사랑의 계명을 완성하지 못할 것이며, 자신을 좌절과 탈진의 상태로 만들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한다는 것을 핑계 삼아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필요를
  찾아나가는 삶일지도 모른다.

 

  의존 하는 자들은 낮은 자존감과 사랑받지 못한다는 감정으로 고통을 받으면서,
  자신들이 착한 사람이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증명함으로써
  이 고통스러운 느낌들을 극복하고자 노력한다.


  착하게 행동하는 것이 착하게 되는 것이라는 의식 안에서,
  쉽게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에 집착하게 되고 착한 일을 함으로써 자신을 정당화시키려한다.

  그들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인정과 관심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다루는 데 능숙하다.
  자신의 고통스러운 무력감을 거부하고,

  모든 관심을 타인의 필요에 집중함으로써 힘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얻는다.


  완벽주의 ... 거짓 온전함
  "나는 완벽한 부모, 교사, 배우자가 되는 것이 좋다."
  "나는 결코 화내지 않는 것이 좋다."
  "나는 항상 올바른 일만 하고 올바른 대답만 알고 있는 것이 좋다."
  마침내 우리는 자신에 대해 연민을 갖지 못하며 냉정하고 지나친 자기비판을 하게 된다.

  완벽주의자가 완전한 자기 통제를 실패했을 때, 그들은 모든 자기통제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음식, 술, 약물, 성, 구매욕 등은 완벽주의자들이

  비실재적이고 이상화된 자아상을 따르기를 실패할 때 경험하는 고통을 완화시키는 것들이다.

  완벽주의의 증상들은 한계를 지니고 있고, 완전하지 못한 인간의 본성과 삶을 거부하는 것이다.

  자신의 종교적인 실천과 업적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얻으려는 유혹을 받을 때마다,
  우리는 항상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필요로 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으로 충분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시기...온전함에 대한 갈망
  시기는 시기를 받는 사람보다는 시기하는 사람에게

  더 불필요한 고통을 가져온다는 것이 시기의 변칙적인 특징이다.
  시기는 단지 이성의 결여와 어리석음이다.
  왜냐하면 시기하는 사람은 자신을 위해 얻는 것도 없고 상대방으로부터 빼앗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단지 그것 때문에 손해를 볼 뿐이다.
  시기하는 사람과 시기를 받는 사람 모두에게 결코 해결되지 않는 혼란과 패배로 끝나게 된다.

  시기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갖고 있음을 보는 고통이다.
  반면에 질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감사와 시기는 상호배타적이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 시기하는 마음을 치유하는 길이다.


  과로 ... 온전함에 대한 방해물

  오늘날 사람들은 흔들리는 자기존중을 지켜 나가기 위해 일중독에 빠지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실재를 피하기 위해 일중독에 빠지며,
  흥청거림이나 분주한 활동에서 얻는 격렬한 감정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 한다.
  현재의 우리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전 사람들보다 안식일을 더 간절히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친밀함 ... 온전함을 위한 시련의 장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15,9.12)


  연민과 협력 ... 온전한 자아를 사랑하기
  네 개의 복음서들이 베드로의 배반을 기록하고 있음은,
  초기 교회가 그 첫 지도자의 결함을 감추지 않고 선포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 사건에 대해 분개하지 않고 오히려 용기를 얻었다.
  베드로의 경험은 그들에게 실패해도 괜찮다는 것을 재확인해 주었는데,
  왜냐하면 항상 용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본받는 것은 연민을 가지고 사랑하는 것이다.
  개인이나 공동체가 겪은 고통은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여 치유 받고, 용서받고, 성장하게 하였다.
  연민은 예수님의 인격과 사명을 특징짓는다.

 

  공동 사목은 우리가 개인주의적이거나 경쟁적인 태도를 버리고,
  각 구성원이 단체에 도움을 주는 고유한 재능들에 대해 감사하고

  격려하는 태도들을 갖도록 요구한다.

  그 사람은 우선 자기 기준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부과하고 무자비한 요구를 하게 된다.
  자신을 모든 것의 기준으로 느낄수록,
  그는 일반적인 완전함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자신의 특별한 기준들을 더욱 주장하게 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않을 때 경멸과 분노를 일으키게 된다.

 

  무위에 대한 이해는 "너그럽게 이해해 주고 하느님께서 하시게 하라"라는

  유명한 구절에 반영되어 있다.
  이 현명한 말씀은 삶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은총을 더 깊게 신뢰하게 하며,
  현재에 우리가 변화시킬 수 없는 일들을 평화롭고 너그럽게 이해하게 한다.

 

  약함을 체험하는 것은 방해물이 아니라 효과적 사목을 위해 중요하다.
  개인적인 약함은 도움과 지지를 받은 데 마음을 열게 한다.
  그것은 겸손을 양육시키며, 협력을 받아들이는 가난의 정신을 양육시킨다.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2코린 12,9)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2코린 12,9-10)


  맺음말
  자신을 무가치하게 느끼고 부끄러워하며 사악한 길에서 돌아와

  집으로 향하던 "잃어버린 아들"처럼,
  우리 역시 자신에 대한 태도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하도록 부름 받았다.
  즉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시기하는 마음에 근거한 자기 거부로부터
  많은 축복에 대해 감사하는 자기수용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 존재의 모든 것, 즉 그림자를 포함한 모든 것을 수용하신다는 것이다.

  선인에게나 악인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시는 하느님은
  우리 존재를 풍성한 은총과 수용으로 감사주시는 데 실패하지 않으신다.

 

  "만일 내가 더 매혹적이고, 지적이며, 능력적이고 성공적일 때에만 나는 더 사랑스럽게 될 것이다.'
  이런 목소리는 우리에게 물직적인 것들과 성취들을 애타게 찾으며 과로하도록 만든다.
  우리는 이러한 성취들이 행복을 보장해주고

  우리의 선함을 다른 사람들에게 반영해 주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우리가 귀 기울여 들어야 하는 복음의 목소리는

  요르단 강에서 예수님께 들려진 하늘의 목소리이며,
  그 하느님의 말씀을 추구하도록 가르친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이 신적인 확신의 말씀이 우리 마음을 관통하게 하고 우리 존재에 울려 퍼지도록 할 때에만,
  우리는 하느님의 무조건적 사랑에 근거하는 개인적 확신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결국 온전함과 충만함을 향한 마음의 갈망들이 오직 하느님에 의해서만 충족될 수 있기에,
  우리는 자신을 하느님께 맡길 필요가 있다.

  - 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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