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진주-함양-남원-전주-부안-김제-조치원-함안
버스를 타면 잠을 잔다. 눈을 감으면 잠에 푹 빠진다. 참 좋은데, 일어나면 뒷머리 모양이 이상해진다. 짧은 머리가 위로 선다. 꼭 노숙자 같은 머리이다. 애써 손으로 비비면서 아래로 눕혀 보지만 별로 신통하지 않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냥 자연스러운 모양에 만족한다.
옆자리가 비어있다. 비어있는 좌석이지만 나의 소지품을 놓지 않는다. 옆에 앉는 사람에게 작은 배려로 생각한다. 그리고 혹시나 젊은 아가씨가 앉을지도... 역시 오늘도 하얀 머리 소녀가 옆에 앉는다.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작은 보따리 2개를 들고 하나는 나의 발아래 놓는다. 버스 내릴 때 조금 더 무거운 보따리를 들어드린다. 할머니가 서있는 발아래 보따리를 놓자, '버스 짐칸에도 짐이 있는데... 있는데... 내가 어떻게...(중얼중얼)', 버스 옆면에 있는 짐칸을 열자 큰 포대가 하나 있다. 포대를 다시 할머니 앞에 내려놓자, '택시를 타고 가야하는데... 저기 큰 도로에 택시가 많이 있는데..(중얼중얼).', 큰 도로에서 택시를 잡아 할머니 앞으로 세우고 짐을 택시에 실어드리고 말없이 나의 길을 향해 간다. 재미있는 할머니다.
배가 고프다. 작은 분식집에 간다. 파리가 날아다니고 식탁과 의자는 조금 지저분하다. 모른 척하고 김밥과 국수를 주문한다. 깨끗한 식당은 아니지만 그냥 정성으로 준비해준다. 남김없이 먹고 나온다.
기차 안에서 창 밖을 본다. 나의 나이도 생각해 본다. 선명한 녹색이 빠르게 지나간다. 1년의 반이 더 지난 지금의 시간 같다. 책을 읽는다. '좋은 생각이 아름다운 55가지 이야기 - 좋은생각'이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있다. 그리고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아버지 생각이 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5개월이 지난다. 아버지가 나에게 원했던 일들을 조금도 하지 못했다. 시간 나는 대로 농사를 짓고 밭에도 채소를 심고 가꾸길 원했다. 너무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고 농사도 지어야 한다고 했다. 논농사는 다른 분에게 넘겨주었고 밭에는 거의 가보지 못했다. 농사 지으라고 관리기도 사고 약치는 기계도 있는데 먼지만 잔뜩 앉아있다. 술을 드시면 집에 와서 여러 가지 옛날이야기도 하고 식사도 같이 했는데 그 기억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현재 나의 생활을 아버지가 보시면 많이 실망할 것 같다. 점차 어두워지고 창 밖으로 화려한 불빛이 스쳐 지나간다.
2002.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