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이야기

베드로의 고백 (베드로 사도의 성소의 여정에 대한 묵상들)

bike 2006. 11. 16. 15:49

'베드로의 고백(베드로사도의 성소의 여정에 대한 묵상들)'을 읽고
- 글쓴이: C. M. 마르티니 | 옮긴이: 이재숙 | 출판사: 성바오로 | 1996년 5월 15일 

 


책 제목만으로 선택을 한다.
베드로 사도는 어떤 고백을 했는 지 궁금하다.

이 책은 베드로 사도의 성소, 시련에 대해 묵상하는 피정이다.
성소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말하는데,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성소를 받은 것이다.
베드로 사도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 교회와 공동체의 '선'이 무엇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나자신에게 묻고 싶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 역시 어려운 시기에 살고 있다.
  오늘날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신앙을 비출 수 있고 보여 줄 수 있는 삶을 살 때 가능한 것이다.

 

  베드로의 여정은 하느님 나라를 향하는 모든 인류 여정의 상징이며,
  아버지의 집을 향한 모든 순례자들의 상징입니다.

 

  고해성사는 단순하게 우리의 죄를 열거함으로써,
  여러가지 죄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손 안에 우리의 전생애를 내맡기는,
  즉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받아들여져 그분에 의해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는 장소라는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그것을 이미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고 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면서
  목표를 향하여 달려갈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를 부르셔서 높은 곳에 살게 하십니다.
  그것이 나의 목표이며 내가 바라는 상입니다." (필립 3,13-14)

 

기도는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한다.
선물이기에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선물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예수께서 곧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태워
  건너편으로 먼저 거게 하시고 그 동안에 군중들을 돌려 보내셨다.
  군중을 보내신 뒤에 조용히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올라가셔서
  날이 이미 저물었는데도 거기에 혼자 계셨다." (마태 14,22-23)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생활화하신 분이시며
  기도로 내적 정화와 평화의 언약을 얻으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면에서 보면 우리는 그 열쇠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실 기도라는 것은 하느님의 선물이며
  우리 안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성령께 자리를 내어 주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이렇게 말함으로써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주님 저는 기도할 줄을 모릅니다. 그러니 당신께서 저를 도와주십시오."

  기도를 드리린다는 것은 지속적인 마음의 새로 태어남과 정화의 노력이 요구되며,
  하느님의 선물에 우리 자신을 활짝 여른 것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될 때만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살 수 있습니다.


닭이 울기 전에 세번이나 배반한 베드로 사도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왜 그렇게 배반해야 했는 지 그 마음을 알아본 적은 없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외쳤던 그 마음과  같다고 한다.


  그는 예수님이 그를 실망시켰고
  상상 조차도 할 수 없는 상태에까지 그를 이끌고 왔기에 그를 모른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과는 더 이상 유대 관계가 없다는 느낌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실존 자체가 찢기는 것 같은 경험을 했을 것이고,
  이제 베드로 사도는 인간은 더 이상 하느님을 알 수 없다는 한계 상황에 도달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절규하실 때
  이 같은 경험을 하셨습니다.

 

  인간의 나약성이나 배반의 경험 없이 성소의 삶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환상이나 우리의 꿈의 열매가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선물이라는 것을 깨달지 않고는 더욱더 불가능합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모든 것은 지나간 과거사이니 생각하지 말자.
  아무것도 없었던 것으로 하자."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나는 당신이 별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앞으로 계속 잘해 보자."라고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 내부에 있는 당신에 대한 신뢰를 다시 구축하게 하기 위해
  그에게 거듭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이때까지 그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초월하게 하는
  예수님의 자비의 눈길을 이해시키도록 하면서,
  그의 마음 깊은 곳에 뚫고 들어가 그의 사랑을 새롭게 하고 있습니다.

 

죄를 짓는 원인을 이 책에서는 세가지로 나눈다.
우리 안에 항상 죄가 존재한다.

 

  어리석음
  예수께서는 하느님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의도대로
  자기 삶을 설계하고 계획하는 사람,
  그리고 외적인 일에 과도한 중요성을 부여하는 사람을 비난하고 계십니다.
  우리 역시 죄의 뿌리가 되는 이러한 행위를 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교만
  교만한 마음이란 어리석음과 아주 유사합니다.
  모든 것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보려 하며,
  자기를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며,
  이 세상과 사람과 역사를 지배하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 내면의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유혹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하느님의 자리에 놓는 것이며
  자신의 판단으로 하느님의 판단을 대신하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악한 눈길
  악한 눈길이란 남을 질투심으로 바라보는 것이고,
  또한 남이 나보다 더 칭찬받는 것에 고통스러워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자세하게 주의를 가지고 살펴보면
  이른 아침에 포도원에 나간 일꾼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이 행동이 바로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악한 눈길이란 우리의 전 존재를 갉아먹는 무서운 욕망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 마지막 부분에 베드로 사도와의 대화가 나온다.
그 대화에서 새벽 닭이 울기 전에 세번 배반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시나
베드로 사도는 절대 그런 일을 없을 것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이야기는 성체성사를 세우시는 장면과 동일한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발을 씻어 주시는 것을 거절한다.
성체와 관련괸 베드로 사도의 태도에서 새로운 사실들을 배운다.


  성체라는 것은 모든 것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나를 위해 십자가상에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베드로 사도는 교만하게 자기가 중심을 차지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당신을 위해 어떠한 일이라도 할 수 있으며

  나는 당신을 도울 가능성과 능력이 있다.'는 식의 입장을 고수한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하여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것을 단호하게 거절하였습니다.
  핵심적인 것은 그가 하느님께서 인간을 위해
  먼저 봉사하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이 신비스럽고 고통스러운 몰이해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성체의 핵심으로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성소의 역사적인 실현이라는 것은 바로 봉사의 장소에서 일어납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가 소비되고 사용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데,
  마치 성체 안의 예수님 스스로가 소비되고 사용되기 위해
  자신을 전부 그대로 놓아 두는 것과 같습니다.

  - 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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