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스크랩

아버지 - 이혜선

bike 2006. 9. 9. 15:47

아버지

어젯밤 당신 꿈을 꾸었습니다

언제나처럼 한쪽 어깨가 약간 올라간,

지게를 많이 져서 구부정한 등을 기울이고

물끄러미, 할 말 있는 듯 없는 듯 제 얼굴을

건너다보는 그 눈길 앞에서 저는 그만 목이 메었습니다


옹이 박힌 그 손에 곡괭이를 잡으시고

파고 또 파도 깊이 모를 허방 같은 삶의

밭이랑을 허비시며

우리 5남매 넉넉히 품어 안아 키워주신 아버지


이제 홀로 고향집에 남아서

날개 짓 배워 다 날아가 버린 빈 둥지 지키시며

‘그래, 바쁘지?

내 다아 안다.‘

보고 싶어도 안으로만 삼키고 먼산바라기 되시는 당신은

세상살이 상처 입은 마음 기대어 울고 싶은

고향집 울타리

땡볕도 천둥도 막아주는 마을 앞 둥구나무


아버지

이제 저희가 그 둥구나무 될 게요

시원한 그늘에 돗자리 펴고 장기 한 판 두시면서

너털웃음 크게 한 번 웃어보세요

주름살 골골마다 그리움 배어

오늘따라 더욱 보고 싶은 우리 아버지 
 
 
이혜선

- 1950년 경남 함안 출생 
- 1981년 <시문학>에 시 <돌문> 등을 발표하며 등단 
- 1989년 한국 자유문학상 신인상 수상 
 

 

'좋은글+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으)로서, - (으)로써  (0) 2006.10.17
인생이 달라진다.  (0) 2006.09.25
플래닛 upgrade  (0) 2006.08.19
신용카드 소액결재  (0) 2006.08.07
카메라폰 잘 찍는 방법  (0) 2006.07.31